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국경의 밤
    취향의 고백 2022. 8. 22. 02:34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그 동안은 '나'를 주제로 한 매우 사적인 에세이였지만, 이젠 저변을 넓혀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인문학 또는 VJ 특공대와 같은 정보 제공형식의 비문학 영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긴다. 

     

    블로그에 쓰는 첫번째 글은 아니지만, 이정표와 같은 글에 어떤 소재를 고를까 잠깐 고민했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고, 지금 아이패드에서 흘러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에 대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루시드 폴, Lucid Fall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다. 더도 덜도 설명이 필요없는.

    호기심이 일어서 나무위키에 찾아보고는 팬을 자처하면서도 생소한 정보들이 많아서 조금 자신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내 첫 글을 여기서 멈출순 없다. 

     

    3집, 국경의 밤 (출처:나무위키)

     

     국경의 밤

     

    2007년 12월 24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들을 꼽아보라고 하자면 당연히 순위에 들 것 같은 날. 

     

    대학에 들어가서 누구에게나 친절했을 그녀의 호의와 친절함에 마음을 빼앗겼고, 더벅머리 청소년 감성을 유지하면서 2년여간 짝사랑에 빠져들었었던 나의 스무살. 스물한살이 되어 평범한 청년이면 으레 가는 군대에 가기 전에 고백 한 마디 못하는 처지가 너무 아쉬웠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날 수 있나요?"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았던 그녀에게 호기롭게 던진 용기, 단 한 번의 용기는 통했다. 친한 친구들과의 약속이 공교롭게 취소된 그녀는 우연히 들어온 약속 제의를 받아들였고, 스물한살 촌뜨기는 약속 장소였던 홍대에 미리 가서 레코드샵에서 이 앨범을 집어들었다. 루시드폴의 팬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마도 팬 비슷한 정도의 단계에 들어섰을 때였던 것 같다. 

     

    (가수 소개에서 갑자기 왠 옛사랑 이야기인가. 이미 방향이 바뀌어버렸다. 돌리기에는 늦었다.)

     

    카페에 가서 대낮부터 데낄라를 시켜서는 객기(취한 것은 아니고 한 잔)를 부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였지만 날은 좋았던 홍대 골목을 산책하고 오후를 보내다가 걸어서 신촌까지 넘어왔던 것 같다. 시끄러운 신촌 거리를 벗어나서 연대 캠퍼스 안으로 들어와서 산책을 했고, 아마도 이문세 아저씨 동창회 콘서트 날이었던지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렇게 해가 저물고 그 오르막길의 끄트머리 쯤 주목나무 등이 있는 작은 정원과 벤치들이 있는 대학본부 앞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앨범 쟈켓에 이미 편지글은 썼었지만, 갑자기 스테들러 삼각싸인펜을 꺼내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알아요?

    고백의 용기는 음성이 아니라 문자였다. 그리고 선물을 건네줬고, 옆에서 앨범 쟈켓을 꺼내서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그녀. 그렇게 추웠던 겨울날은 아니었지만, 뭘 그렇게 떨었을까. 살면서 그렇게 떨어본 적이 있었을까?

     

    말해줘서 고마워

     

    음, 사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당황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우린 실외 공원에서 기억도 나지 않지만 문이 열려있던 남의 학교 건물에 들어갔고 어스름 불빛이 있는 계단에 앉았다. 아마 동아리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니 학생회관 쯤이었을까? 

     

    연애경험이 전무했던 더벅머리 촌뜨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라고 물었었을까, '우리 사귀는 것이냐?' 라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응"

     

    기쁨에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고, 나의 돌발행동에 내내 고요하던 그녀도 화들짝 놀랐다. 

     

    문자로 고백함에 이어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마에 입을 맞추는 당돌함이라니,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 편집영상 같지만 사랑이라는 마음이 어디 앞뒤가 있다던가.

     

    루시드폴에 대해서 쓰고 싶었지만, 루시드폴의 국경의 밤이 연결해 준 두 개의 우주, 그 순간을 기록하였다.

     

    앨범 표지만 보아도 마음이 좋고, 수도 없이 들었던 앨범 속의 음악들. 사랑의 노래보다는 사회를, 친구를, 우정을 그렸던 앨범이다. 그래서 타이틀 곡인 '국경의 밤'을 듣고 있으면 나의 고향친구가 생각나기도 한다. 친구와 여행을 가 본 적은 없지만 친구와의 여행을 상상하게 해주는 노래가사였다. 

     

    그 뒤로도 루시드폴의 새 앨범이 나오면 기다려가면서 들었고, 2년마다 콘서트도 함께 했다. 

     

     

    에필로그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결혼을 했고, 두 이쁜 아이를 얻었다. 

    첫째 아이의 태명은 '연두', 그리고 둘째 아이의 태명은 '봄눈'.

     

    연두와 봄눈.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