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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와 귤
    기억하고 싶은 날 2023. 9. 7. 14:34

    유치원 다닐 때였다. 7살이었을테니, 딱 둘째 정도였을테다. 유치원 마치고 집까지 오려면 아이의 걸음으로 30여분을 걸어왔어야 했다. 버스도 있긴 했지만, 오전 두 번, 오후에 세 번 정도만 다녔고, 보통은 중고등학생들 하교시간에 맞춰져 있어서 유치원생은 걸어올 수 밖에 없었다. 한 동네 사는 동갑내기 사촌과 뚜벅뚜벅 걸어올라왔을테지. 마을 어귀 쯤에 왔을때였다. 시내버스가 오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흔들었더니 버스를 태워줬고, 차표 한 장을 내고서 버스에 올라섰다. 마을 어귀였더라도 1킬로미터는 됐으려나, 차로 가니 금방 정류장에 도착하여 내렸다. 이미 버스를 타고 계셨던 할머니들이 몇 분 계셨는데 그래서 완전범죄는 힘들었다. 그 중 한 분이 마중나왔던 어머니에게 말하셨던 것 같다. 
     
    이미 버스를 잡아 탈 때부터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라는 느낌은 어린 나도 충분히 느꼈었지만,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저질러버린 일이었다. 바로 집으로 가서 회초리를 몇 대 맞았던 것 같다. 아 이런 행동은 다음에는 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마음이었고, 아직 받을 벌이 더 남았나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크게 혼나진 않고 어머니가 귤을 내어주어 맛있게 먹었다. 응? 더 혼날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그 뒤로는 그 일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던 기억이다.
     
    이제 내가 그 때의 나 정도 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일까? 어머니를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순간들 중 하나다. 부모가 되어서 생각해보면 큰 잘못은 아니지만, 잘못된 행동임은 알게 해줘야 하는 마음에 혼이 났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일 하나로 자식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진 않았을테고, 맛있는 귤이 집에 있으니 간식으로 내어줘야겠다는 마음이 아니셨을까? 그 때의 어머니가 되어볼 수는 없지만, 어림짐작으로 그런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
     
    그 때는 잘 몰랐지만, 더 혼나지 않아서 의아했고, 혼난 뒤에 바로 귤이라는 새콤달콤한 간식이 주어졌던 것이 어린 나이에는 이상하게 느껴져서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것인가보다. 그리고 그 때를 회상하며 지금 드는 생각은 어른은, 아빠는, 엄마는 아이의 눈 높이에서는 긴가민가 하는 범주의 잘못된 행동들을 가르쳐 주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어렸을 그 때의 어머니 덕분에 나는 마을 어귀에서 버스를 재미삼아 타보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 때의 어머니도, 그리고 그냥 어머니도 보고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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