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9월은 달린다
    Viva! 멕시코 2023. 9. 4. 09:07

    현장에 복귀한 지 어느덧 2주째다. 1주차는 일하기 싫어서 헤롱헤롱, 2주차는 일하기 싫지만 일이 많이 생겨서 허겁지겁 보내다보니 퇴근만 하면 방에 들어와서 씻고 영화나 유튜브 영상 보다가 잠들기 바빴다. 한 열흘간은 조만간 루틴이 생기겠지 하며 맘편히 일상의 바닥에 드러누워 지냈지만, 보름이 다 되어갈때쯤 이제는 다시 운동을 한다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던지 하는 루틴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바닥의 삶이 조금은 불편해졌다. 그러던 중 어제 토요일, 힘을 내어 해가 져서 주위가 어둑해질 무렵 방문 앞을 나섰다. 어제 내렸던 비 덕분인지 한낮에 달궈졌을 공기가 심하게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방문을 박차고 나온 발걸음이 더욱 탄력을 받는다. 

     

    부둣가에 주차하고, 방파제로 걸어나가는 동안 러닝용 스마트워치를 설정한다. 오늘의 추천훈련이라고  25분, 6.25Km/h 라고 나온다. 항상 이 쯤의 훈련코스가 떠서 보통은 무시하고 30분을 맞춰놓고 달리지민 오늘은 오랜만에 뛰는지라 적당하다는 생각에 확인을 누른다. 적어도 한 달은 지났고, 한달 반, 두달만에 뛰는 것이다. 그 사이에 여행을 하면서 오래 걷기는 했지만 뛴 적은 없으므로 몸을 충분히 풀어줘야 할 것 같아 평소에는 건너뛰던 스트레칭을 조금은 품을 들여 한다. 그래도 얼른 뛰고 마치고 싶은 생각에 2,3분 남짓 몸을 풀다가 워치의 시작 버튼을 누르고 달리기 시작한다. 

     

    산책하러 나온 몇몇 사람들, 나처럼 달리기 하는 사람들, 가로등이 군데 군데 켜져 있는 어두운 방파제를 달리는 것이 무섭지 않게 해주는 적당한 환경이다. 가볍게 시작하였지만 등대를 분기점 삼아 한 바퀴 달리면 얼추 스마트워치에서 1킬로미터를 뛰었다는 안내음이 삑 울린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 밤, 1바퀴를 뛰고나니 무덥다. 낮동안의 달궈졌을 시멘트 바닥의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달리는 이 길이 달라졌을리가 없지만 오늘은 주로 갈매기나 펠리컨들이 앉아있는 마을쪽 난간이 반질반질하게 보인다. 방파제 중간 쯤 벤치가 치워져 있어서인지 확장공사를 했나 싶게 넓은 공간이 생겼다. 주로 연인이나 가족들이 앉아서 산책하는 사람들이나 나처럼 달리는 사람들을 무심히 지켜보며 쉬던 그 공간이었는데, 지난 허리케인에 벤치가 날라간 것일까 보이지 않는다. 

     

    3바퀴를 달리니 눈을 찌를만한 길이로 자라서 거추장스럽던 앞머리를 고정시키려 썼던 모자를 휙 벗는다.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해서 머리가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차다. 너무 덥다. 애플 뮤직으로 러닝용 트랙을 무작위로 재생시켜서 나오던 모르는 팝송들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시리를 찾으며 상큼한 노래로 힘을 받고자 뉴진스를 부르짖는다. 슈퍼 샤이 같은 빠른 템포의 노래를 원했으나 뉴진스가 이런 노래도 불렀다 싶을 잔잔한 노래들만 틀어준다. 신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니 블랭핑크의 러브 식을 틀어준다. 그마저도 답답한 것이 노래 탓이 아니라 노래가 모두 거슬리는 내 몸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에어팟을 빼서 주머니에 넣는다. 

     

    일단 25분, 6.25Km/h 를 달성하되, 조금만 더 뛰어 4바퀴는 달리자는 심산으로 운동코스는 가까스로 달성하고서 조금 더 뛴다. 4바퀴, 평소 5바퀴를 30분 정도에 뛰는데 오늘은 4바퀴에 진이 빠진다. 더위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달려서이기도 할테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빨개진 얼굴로 바로 차로 직행하고 싶었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열을 식히기 위해서 한 바퀴는 걷는다. 몸의 열기가 식으니 밤 공기가 제법 선선하다고 느껴진다. 

     

    오늘의 이 기분을 돌아가서 기록으로 남겨야지 결심이 선다. 돌아오는 길에 새로 생긴 OXXO에 들러서 Coors Light 6캔 팩을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달리기는 디스크 조각모음 같다. 아니 고클린 청소, 아니 조금 더 요즘의 것들로 비유하자면, 알약 청소같다. 조금 더 자주 하고 싶지만 우선은 한 주에 한 번만이라도 꾸준히 해보자.

     

    'Viva! 멕시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헐적 단식  (2) 2023.12.04
    (Ejercicio) Zwift, 요가소년  (0) 2023.11.28
    (2023.11.07) 오늘의 일기  (0) 2023.11.08
    아침 챙겨먹기 (부제 : MEAL PREP)  (2) 2023.09.14
    여름이 시작됩니다  (0) 2023.07.01
Designed by Tistory.